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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8

crossin/하루

여성의 날
여성학과 학생을 만났다

길을 걷다 선생님과 비슷한 실루엣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주치고 싶지만 마주치고 싶지 않다

본질 따위 알고 싶지 않다
내가 비겁하다는 것은 잘 안다

급성 백혈병
열두시간 만에 두배로 늘어나는 암세포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아주 빠르게 죽어갔구나

앞으로 더 많은 질병을 공부하게 되면 그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다시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하겠지
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런데 오늘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를 떠올리게 되어 당황했을 뿐이다
나는 누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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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 삭제

crossin/하루

중학생 때부터 계속 써 오던 네이버 아이디를 삭제했다. 

그 전부터 그 계정으로는 거의 로그인을 하지 않았음에도 블로그에 남겨두었던 기록들을 어쩌지 못해 탈퇴를 미루고 있었다. 

오늘 이것 저것 뒤져보다 PDF 파일로 글을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수백개의 글을 몇 개의 파일로 저장한 뒤 아이디를 삭제했다. 


탈퇴하기 전, 그 동안 가입했던 까페에 들어가 내가 쓴 글들을 모두 삭제했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한 글들이 많아 당황했다. 

특히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밴드의 팬까페에 매일 일기를 쓰듯이 글을 올린 것을 보고, 민망함이 앞섰지만,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 내가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밖에 없었지.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반응을 통해서 멋대로 그 사람을 상상하기도 하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부담스럽게 연락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실제로 친해진 사람들도 많았고.

너무 생략이 많고, 뜬금없기까지 한 글들을 매일 올리는 고등학생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새삼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이 되게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때보다 나아진 걸까. 그래서 이제는 인터넷으로 사람을 찾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 때의 기억이 또 다른 나쁜 기억들로 자리잡아 그것마저 피하게 된 걸까. 지나간 시간 속의 나를 연민하고 싶지 않은데, 오늘 같은 날은 계속 내가 안쓰럽다. 십년 전의 내가 너무 안쓰럽다. 힘들었던 나의 마음을 절절하게 토로하고 있는 글들을 마주칠 때마다 이건 지우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지우려고 마음 먹었다면 지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다 지워버렸다. 탈퇴하고 나면 지우고 싶어도 지우지 못하게 될 테니까. 지금껏 내가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던 많은 글들이었는데, 그걸 다시 다 들춰내서 살펴보고, 지워버렸다. 그 시간의 나는 이제 무엇으로 남을까. 이렇게 다시 십 년 의도적으로 돌아보지 않으며 살면, 오늘 내가 이런 글들을 읽고 가슴 아파하면서 지워버렸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될까. 그리고 그 시간들은 완전히 사라진 시간들이 될까. 그럼 나는 행복해질까. 




한편으론, 그 때와 비슷한 인생의 전환기에 선 상황에서, 그 때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절대 그렇게 되어선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비슷한 상황에서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깜빡거리기도 하고. 마음이 영 복잡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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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담

crossin/하루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이야기를 상상했지만,

결국 입 밖에 내지 못한다. 글로라도 남기려다 지워버렸다.


이도 저도 못하는 끔찍한 성정에 넌덜머리가 난다. 


사실 가장 정떨어지는 건 나지.

지난 시간을 곱씹고 곱씹으면서 결국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으니.

스스로를 화나게 하는 것도 나고, 스스로를 역겹게 만드는 것도 나고. 

내가 사라지면 될 텐데.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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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in/하루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와 이별하고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 일

 

나도 아직 그 속에 있는 걸까, 이제는 빠져나온 걸까

 

지금까지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은 아직 남아있고, 앞으로도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고 다시 만날 것이다. 지금 네가 누굴 사랑하고 있어도, 언젠가 꼭 다시 한 번은 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고 생각한다.

 

정작 서로 사랑한다 말할 수 있었을 땐, 그냥 바람같은 감정이었는데. 기분 좋게 맞는 바람.

이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데, 끈끈하고 무거워졌다.

 

사실 그 이후로 누군가와 연애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한창 만나다 헤어지고 난 뒤 비일상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 그런 생활을 다시 일상적인 것으로 바꾸어놓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연애 자체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점점 비연애상태가 길어지는데, 이러다 평생 비연애인구로 살아가는 것도 싫지 않다.

 

그렇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싫겠지. 내가 계속 자기 블로그를 들어가고, 카톡 프로필을 체크하는 것을 알고 있을테니, 제발 부디 다른 사람에게 그 열정을 쏟아주길 바라고 있겠지.

그런데 정말 나도 모르겠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한 미련을 이렇게까지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가 서로 연애한다고 말하던 몇 개월의 시간 동안에 나는 정말 시들했는데. 편하고 좋긴 했지만 정말 그냥 그랬어. 이렇게 질척거리게 될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었어. 정작 그런 마음을 들키고 차여버리니까 불이 붙어버린 건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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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crossin/하루

내일, 아니 오늘 첫 만남을 앞두고 있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일단 C를 만나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모르는 척 할 수는 없고, 먼저 말을 걸어야 하나? 무슨 말을 나눠야 하지. 그 때 내가 말이 심했다고, 앞으로 계속 마주쳐야 할 텐데 서로 불편하지 않게 지내자고. 그 정도만 말하면 될까? 모르는 척 하는 것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표정은 어떻게? 너무 들뜨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태도는? 너무 꼿꼿하지도 비굴하지도 않게.

예상되는 반응은
대화를 거부한다/날 피한다
먼저 말을 건다
화를 낸다/욕을 한다
적당한 얼굴로 나처럼 응대한다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1과 4
가장 긍정적인 반응은 4
가장 재미있는 반응은 3
가장 조심해야 하는 반응은 2와 5

그 외의 사항은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으로

 

C는 좀... 멍청하다고 생각되는데, 이렇게 얼마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덕분에 편해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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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crossin/하루

2년 쯤 전에 아주 과제가 많은 수업을 동시에 여러 개 들었다. 일주일에 각기 다른 주제로 글을 두 세 편씩 써야 했는데, 일기도 쓰지 않는 나에게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질은 보장하지 못해도 기한을 넘기지는 않는 것을 목표로 한 학기를 보냈고, 결과적으로 성공하기는 했다. 이런 영양가 없는 성실함은 질 낮은 글을 마구 쏟아내게 했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것 자체를 덜 무서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 때는 A4 한 두 페이지 정도는 정말 쉽게 쓸 수 있었다. 물론 부족한 글이지만은.

그런데 그마저도 안 하게 되니, 이제는 글의 질도 양도 기준 미달이다.

졸업 논문을 쓰면서 뼈저리게 느꼈는데, 개요를 짜는 것 부터가 너무나 어렵고, 이 주제로 쓰면 어느 정도 분량이 나오겠다는 감도 완전히 잃어버렸다. 결국 졸업 논문 제출에는 실패했다.

그러다 지금 어느 정도의 질이 요구되는, 분량이 정해져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쓰기 싫기도 하거니와 안 써진다. 보통 어느 정도 쓰고 나면 '이 정도 분량이겠거니' 하는 감이 오는데, 적당히 쓰고 확인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분량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손을 대기도 싫어 그냥 미뤄두고 있다.

과제라는 것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나보다. 그 많은 보고서들을 다 어떻게 써 왔던 건지, 과거의 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때 써뒀던 글을 보면 영구 삭제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애를 쓰고는 한다.

 

나는 성실하다는 평을 종종 듣는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면서 결석한 날은 하루도 없다. 물론 지각은 종종 했다. 그러나 나에게 이것은 성실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강박이다. 나에게 있어서 성실한 것은 단순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을 기한에 맞게 제출한다고 해서 성실한 게 아니라, 기한에 맞춰 열심히 써야 성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성실하지 않고, 이렇게 정신은 빼두고 몸만 왔다갔다 하는 것을 굉장히 바보같은 일이라고 자책하면서도, 결국 그 시간에 꼭 그 자리에 가게 된다. 시간과 돈(교통비)를 버리는 일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는데, 이 글을 쓰다보니 그것도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희망이 생긴다. 하지만 아닐 것을 안다.

아 그런데 오늘 결석했다. 와. 맞네 오늘 결석했다.

계절학기 청강 수업이었는데, 마지막 날이었는데 결석했다. 의미있는 날이군. 그런데 그 수업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은데.

 

어쨌든, 나는 이 강박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다 성실한 것이라고, 좋은 자질이라고 말해주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면 그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있어. (미안)

지각도 하고, 약속도 마음대로 펑크내고 싶다. 잠수도 타고 싶고,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안 해버리고 싶다.

2월은 그래봐야지.

그런데 오늘 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모임을 계획해봤다.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글은 쓰고 싶다. 아니 글을 잘 쓰게 되고 싶다. 글을 잘 쓸 수 있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

 

그러면 지금 니가 해야 하는 것부터 하란 말이야. 발제문을 어서 완성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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