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in/사람'에 해당되는 글 6건

하루 종일

crossin/사람

매일 아침마다 지나가는 까페에는, 항상 같은 시간에 앉아 창 밖을 쳐다보는 여자가 있었다. 내가 십분만 늦어도 볼 수 없었던 여자. 늦은 출근이 가능한 날에도 그 얼굴을 보고 싶어 항상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곤 했다. 그 여자가 특별히 아름다워서 나의 마음을 뛰게 했다거나, 더 알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쫓기듯 출근하는 나와는 달리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면서도 몇 분만 지나면 그녀도 까페를 떠난다는 사실이 어떤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crossin >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흡연자  (0) 2015.09.12
그녀의 엘리트주의  (0) 2015.06.29
3.  (0) 2014.12.26
2.  (0) 2014.12.26
1.  (0) 2014.12.26

흡연자

crossin/사람

그는 매일 자신의 방 베란다에서 담배를 핀다.

담배를 한 두 모금 빨고 나면 윗집 어린 여자애가 나와서 소리친다. '저기요' '저기요 담배피지 마세요'

그러면 반사적으로 담배를 바깥에 버리고 창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온다.

씩씩거리면서.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어린년이 건방지게.

 

그는 지방의 교수다.

평일은 지방에 내려가 지내다가 주말에만 서울에 올라온다.

 

주말 내 집에서 담배도 못 피나.

 

그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 여전히 베란다에서 담배를 핀다. 그 어린 년이 뭐라고 하지 않을 때는 어쩐지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결국은 내가 이겼다는 마음에 담배는 더 달다.

 

그래 내가 계속 피겠다는데 지깟게 뭘 어쩔 거야.

 

집 밖에서도 피울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왠지 지는 것 같아서 싫다. 어린 년한테, 내가 그 어린 년 말을 들을 수는 없지. 나는 교수인 걸. 내가 매기는 알파벳 하나에 울고 짜는 멍청한 새끼들. 그런 것들한테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지.

아파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일부러 집 밖에서 피운다.

12층의 젊은 남자도, 6층의 나이 많은 아저씨도. 심지어 일층에 사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지 먼 주차장까지 가서 피운다.

자기 권리도 못 챙기는 등신 새끼들. 얼마나 한심한지 모른다.

 

 

 

그의 폐 속 세포 하나가 터졌다. 그는 이제 느낄 수 있다. 폐 속에 피가 흐른다. 피가 고인다. 아물겠지. 생각한다.

 

이제 담배는 피우지 말아야지.

 

며칠 뒤 다시 또 세포 하나가 터졌다. 굳은 피 위로 다시 또 피가 흐른다. 그는 초조해진다. 같은 학교 의대 교수인 김에게 전화한다.

 

 

자기가 점차 죽어간다는 걸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 그 과정에서 전말을 아는 한 사람(?)

1. 세포가 하나하나 사멸하는 것, 암세포가 생기는 것.

2. 죽으라고 기도했어요

 

'crossin >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종일  (0) 2016.06.12
그녀의 엘리트주의  (0) 2015.06.29
3.  (0) 2014.12.26
2.  (0) 2014.12.26
1.  (0) 2014.12.26

그녀의 엘리트주의

crossin/사람

개인을 평가할 때는 외모보다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나는 대중을 믿지 않는다.

'crossin >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종일  (0) 2016.06.12
흡연자  (0) 2015.09.12
3.  (0) 2014.12.26
2.  (0) 2014.12.26
1.  (0) 2014.12.26

3.

crossin/사람

그는 캐리어를 들고 다닌다.

캐리어 안에는 배낭과 책 몇 권이 들어있다.

그가 읽는 책에는 공부법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동두천 꿈나무 정보 도서관에서 빌렸다.
그는 지금 분당선에 앉아 그 책을 읽고 있다.

그는 모든 짐을 캐리어에 넣고, 캐리어를 책상 삼아 책을 읽는다.
그는 두꺼운 겨울용 자켓과 뭔가가 군데 군데 묻어있는 얇은 바지를 입고 있다.
그의 나이는 사십대 중후반 즈음으로 보인다.

그의 머리는 가운데가 휑하게 벗겨져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옆자리 여자와 부딪힐 때 조금 짜증이 나긴 하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좁은 전철에서도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고, 팔짱을 끼고 사방으로 머리를 돌려가며 졸 수 있다.
잠시 졸다 깬 그는 다시 책을 꺼내 든다.
그는 움직이는 전철에서 책을 읽는다.
수험공부를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인지 알려주는 책을 읽으며 대모산 입구를 지나고 있다.

'crossin >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종일  (0) 2016.06.12
흡연자  (0) 2015.09.12
그녀의 엘리트주의  (0) 2015.06.29
2.  (0) 2014.12.26
1.  (0) 2014.12.26

2.

crossin/사람

그녀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
아들은 수도권 사립 대학의 교수이고, 며느리는 주부이다.
그녀는 스물 한 살 열 아홉 살인 손자가 둘 있는데 모두 미국에 있다.
그녀의 남편은 십 이년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로 혼자 살다 삼개월 전부터 아들 내외와 함께 살게 되었다.
많이 배우고 많이 버는 아들은 언젠가부터 아들이 아니라 어려운 선생님 같다.
차분한 성격의 며느리에겐 왠지 눈치가 보인다.

세상을 떠난 남편을 포함하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사람들 중 편한 사람이 없다.

그녀는 매일 동묘로 간다.
매일 아침 9403 버스를 탄다.
9403 버스는 그녀의 집 앞 정류장을 종종 지나쳐버린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그녀는 정류정 옆 가로수에 꽂혀있은 무가지들을 본다.
구인구직 정보가 담겨있는 신문에 시선이 머문다.
무거운 관절을 움직여 무가지를 집어드는 순간, 그녀가 타고자했던 버스가 지나간다.
당황한 그녀는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한다.
그녀의 엉거주춤을 보고 옆자리 젊은 여자는 민망해한다.
그녀는 민망한 감정 보다는 속상함이 더 크다.

'crossin >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종일  (0) 2016.06.12
흡연자  (0) 2015.09.12
그녀의 엘리트주의  (0) 2015.06.29
3.  (0) 2014.12.26
1.  (0) 2014.12.26

1.

crossin/사람

그녀는 열 여섯이다.
지금은 학기 중이다.
지금은 낮 열두시 사십 구분이다.
그녀는 지금 버스에 탄 채 서울로 가고 있다.
운동화를 벗고 양말만 신은 두 발을 의자에 올리고 앉아있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째려본다.
너네는 뭐 하는 사람들인데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거지.
그녀에겐 흔한 일이 아니다. 이 시간에 학교가 아닌 곳에 있는 건. 이 시간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건.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책가방을 매고 올라타는 대학생,
직장인 같아 보이는 아저씨,

예쁘게 꾸민 할머니,
츄리닝을 입고 탄 백수같은 여자.
하는 일은 다양해보이지만 나이도 직업도 다르지만 삶의 얼굴은 같다.
금방 싫증이 난 그녀는 옆자리에 올려 둔 자신의 배낭을 베개삼아 눕는다.
그리고 잠이 든다.

'crossin >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종일  (0) 2016.06.12
흡연자  (0) 2015.09.12
그녀의 엘리트주의  (0) 2015.06.29
3.  (0) 2014.12.26
2.  (0) 201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