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of life

crossin/바깥

좋아하는 선배가 빌려줘서 읽었다.

 

사실 읽다가 차마 못 보겠어서 덮었다가, 그래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꾸역꾸역 읽었다.

 

네 권짜리 만화책을 읽는데 이 주나 걸렸다.

 

그 친구가 생각났다.

 

주인공은, 물론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한 삶이지만, 그래도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친구는 영원히 열 여덟을 넘길 수 없다.

 

이후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

 

나는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데,

 

그 친구는 여전히 그 곳에서 그 시간 속에서 고등학생으로 존재한다.

 

생의 시계가 멈춰버린 사람들 중 이 친구를 생각할 때 가장 마음이 애린 것은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해서.

 

학원에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와 그 때 그냥 스크류바 먹을 걸. 괜히 캔디바로 바꿨다. 였다.

 

그냥 걔가 사준 거 먹을 걸.

 

그리고 다음 날 바로 맛있는 거 사줄 걸.

 

나 기분 나쁘다고 쌩 모르는 척 하지 말 걸.

 

휴학하기 전에 인사라도 할 걸.

 

그럴 걸, 그렇게 할 걸, 그러지 말 걸.

 

 

열에 하나.

 

아마 나를 기억하지 않을지도 몰라. 나를 싹 다 잊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나를 생각한다면, 좋았던 기억들만 떠올렸으면 좋겠다.

 

우리 함께 했던 순간이 열이라면 그 중에 서로 웃으며 마주했던 하나, 혹은 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내가 후회하는 것들, 미안한 것들, 혹은 네가 불편했던 것들은 내가 다 가질게.

 

남은 것들을 짊어지고 살아지는만큼 살아가는 것

 

힘들다고 내려놓지 않고 불편하다고 잊어버리지 않고 최대한 다 끌어모아서 온 몸에 꽁꽁 묶은 채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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